Artist CV
1965 Born in Kongju, Korea
1988 B.F.A Dept.of paintings, College of Fine Art, Mokwon University
1990 M.F.A Dept.of paintings, Graduate school of Mokwon University
SELECTED SOLO EXHIBITION
2019 Gallery Rho, Seoul. Korea
2018 Gallery JEON, Daegu. Korea
Indang Museum, Daegu. Korea
2017 KIAF - Gallery Sesom, Seoul. Korea
Lotte Avenuel Art Hall, Seoul. Korea
2016 Scope New York, New York. U.S.A
2015 Hasted Kraeutler, New York. U.S.A
Daejeon Museum of Art. Daejeon. Korea
2014 Gallery SESOM. Changwon. Korea
2013 Lotte Gallery (Seoul)
2012 Gallery Hyundai (Seoul)
Hasted Kraeutler (New York)013
SELECTED GROUP EXHIBITION
2014 Meaningful Patterns (Art Center White Block, paju)
當代의 語法展(I gong Gallery, Daejeon)
Art Stage Singapore (Marina Bay Sands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
2013 LA Art Show (LA Convention Center/South Hall J & K (Los Angeles, California, USA))
Art Palm Beach (Palm Beach County Convention Center (Palm Beach, Miami, USA))
ART 14 London (Olympia Grand Hall)
The Aesthetics of Imitation (Ewha Womans University Museum)
ART 13 London (Olympia Grand Hall)
Art Stage Singapore (Marina Bay Sands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
2012 Human is more beautiful than flower (Ilwoo Space, Seoul)
Instruction of the Contemporary Art (Posco Art Museum, Seoul)
Blooming Art (Lotte Gallery, Daejeon)
Art cultivation (Daejeon Museum of Art)
The Queen: Art & Image (National Museum, Wales /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2011 The Queen: Art & Image (Royal Academy, Edinburgh/ Ulster Museum, Northern Ireland)
Art Education Department Mokwon University (I gong Gallery, Daejeon)
The Exhibition of GEUMGANG ART (Daejeon Junggu Cultural Center / Daejeon MBC Gallery M)
Dot and… (Interalia Art Company, Seoul)
LEEHWAIK Gallery 10thAnniversary(LEEHWAIKGallery,Seoul)
Comment about Paintings (Deokrin Gallery, Daejeon)
Asia Top Gallery Hotel Art Fair (GRAND HYATT SEOUL)
Dual Image (Pohang Museum of Steel Art)
About Artist
부분과 전체가 구성하는 아름다움의 의미에 대하여
간송미술문화재단 큐레이터, 이진명
김동유 작가의 그림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림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한두 번쯤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접해보았을 것이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역사적 인물로부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셀레브리티, 작가가 사랑해 마지 않던 선배 화가들의 초상과 작품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한 헌사 등 그 모두가 유명하다. 미적이며, 탄탄하고 견고한 회화적 물성을 마음껏 뽐내고, 장쾌하면서도 세세한작가의 손놀림은 회화라는 매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테크닉의 기량을 다 보여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그림들이 뜻하는 진정한 숨은 의미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신비한 개념인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는 여전히 통용되고 진실이기에 영원할것이다. 칼로카가티아란 "진선미는 하나여서 따로 떼거나 분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는 뜻이다. 작가는 신비한능력이 있다. 사물을 바라보고 거기에 무궁한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특별함이 바로 그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일상에서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평범한 시각과는 다른 특별한 사유를 자주 창출하곤 한다. 그는 시든 꽃에서 사랑을 찾고, 버려진 무명 화가의 그림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낸다. 가장 범속한 호랑이 무늬에서 삶의 에너지를 발견하기도하고 대중잡지의 일시성에서 영원성의 가능성을 읽곤 한다.
불교에서 양족존(兩足尊)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아주 대중적인 용례이다. "두 발로 걷는 생명체 중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보통 고타마 싯타르타를 가리킨다." 두 번째 용어가 김동유 작가와 관계 있다. "이 용어는 특별하게 현상계와 절대계 양쪽 모두에 하나의 다리씩 걸치고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김동유 작가는 과연 절대계까지 읽어내는 사람일까?
내가 10년간 지켜본 작가에 대한 판단에 의하면 그럴 확률이 아주 높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일컬어 일상생활(everyday life)이라고도 말하고, 현상(appearance)이라고도 부른다. 현실을 그러나 리얼리티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류이다. 리얼리티는 실재라고 번역되며, 우리 눈앞에 보이는 현상 너머로 진실하게 존재하는 어떤 대상의 진정한 상태를 말한다. 일례로 고대 그리스부터 이러한 논쟁은 끊이질 않았다. 데모크리토스 같은 사람은 "실재는 원자의 배열이다."고 말하기도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는 지풍화수아이테르(공)으로이루어졌다.”고 밝힌 사실을 상기하면 된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성행하는 요즈음까지 정밀한 답은 없다. 다만 작가의 생각과 가장 유사한 학자의 고견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분은 세계, 나아가 우주는 초양자장(super-quantum field)으로 가득 충만해있다고 주장한다. 우주에 중력이 생기고 확산운동(브라운 운동)이 있고 수분이 증발하고 모이고 소금기가 있으면 삼투압 현상이 있는 모든 법칙의 원초적 베이스에 초양자라는 기초적 원리가 우주만물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봄의 과학철학은 한마디로 말해서 "겹침과 펼쳐짐의 영원한 소용돌이 (eternal vortices of enfold and unfold)"라고 정의할 수 있다. 초양자가 겹치면 파동(wave)이 된다. 파동이 여러 개로 겹치면 미립자(photon, electron)가 된다. 이 미립자가 여러 개로 겹치면 원자(atom)이 된다. 원자가 여러 개로 겹치면 분자(particle)가 된다. 분자가 여러 개로 겹치면 바로 물질이 된다. 따라서 물질 역시 기본적으로는 파장(wave)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느끼고 사고하는 과정은 화학적 물질의 운반에 의해 이루어진다. 머릿속의 사유는 물질이고이 물질은 곧 파장이기 때문에 정신(mind)과 물질(matter)은 다른 둘이 아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물질 역시 파장이기 때문에 낮은 차원이기는 하지만 의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과 애정을 주면 그것들은 우리
의 마음에 그대로 응해서 정확히 반응을 한다. 이것은 모든 양자 물리학자들의 일관된 견해이다. 물질과 정신이 같은 것이고 너와 내가 본디 둘이 아니라는 것이 현대물리학의 결론이다. 때문에 외부세계와 인간 내면이 둘이 아니라는 북송 5자 중 한 사람 정명도(程明道) 선생의 가르침은 현대과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김동유 작가는 바로 이러한 지점까지 정확히 파악한다. 우리가 뉴튼-데카르트 식 물리학과 세계관인 주관, 객관의 이분법으로 우주를 바라볼 때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파편적 시각에 의한 사고(fragmentary thought)이다. 이 파편적 시각이 종국에 불러올 결과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분해라는 사실을 작가는 본능적으로 느껴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작가는 스스로 물어보았고 우리는 전체적 사고(thought of holeness)를 지향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전체(whole)는 건강(health)와 성스러움(holy)의 어원이 되는 고대 그리스어 '할로(halo)'에서 비롯되었다. 전체를 지향해야만 비로소 건강한 사고나 성스러움이 솟구칠 수 있다. 작가의 세계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데이비드 봄에 비견되는 최고의 천재 엘빈 라스즐로(Ervin Laszlo)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명백한 진리 하나를 발견했다.
1930년대 영국 웨일즈 지방에 인류 최초로 우유 배달 시스템이 생겼다. 병에 우유를 채우고 종이마개로 막는우유제품의 배달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웨일즈의 작은 마을에서 우유 종이마개가 열려있는 현상이 자주 목격되었다. 사람들은 원인을 분석했다. 어느 날, 배달할 때 종이마개에 형성된 우유 크림층을 지빠귀새가 먹으려고리로 뜯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반경 수 킬로미터를 벗어나지 않는 지빠귀새의 우유 마개 뜯기 행동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행동을 학습한 것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중 배달 시스템은 중단었고 50년대 다시 재개되었다. 그런데 지빠귀의 같은 행동은 다시 부활했다. 이러한 동물의 행동 패턴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유의 크림층이 생존에 유익하다고 발견한 어느 선구적 지빠귀새의 행동은 그 종의 모든 새로 확산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천재 학자 라스즐로는 그스타프 칼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것은 최초 행동의 지빠귀새의 생각과 경험이 전체의식에 접속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물을 분리하여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과학적 동물일까? 라스즐로는 "우리 역시 집단의 전체 의식에 접속하며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5~400년대에 걸쳐 각각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라는 성인이 같은 시대에 나왔다. 이후에 인간은 각각 육바라밀(六波羅蜜), 사단(四端), 선의 이데아를 믿고 실천할 줄 알게 되었다. 인간 의식은 이 성인들의 등장 이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류의 도덕이 무너지고 위기에 빠지면 우주는 어김없이 이러한 분들을 보낸다. 이로도 모자라 400년 후에 그리스도나 수많은 예언자와 성자들을 지상에 지속적으로 보냈다. 중국에는 북송 5자가 있고 이슬람에는 13세기의 대현인 이븐 할둔이 있다. 조선반도에는 포은, 우암, 퇴계, 율곡 등 동국 18 현인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의식은 하나로 이어져서 통한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초양자는 우주에 충만하고 종국적으로 이것이 파동을 이루어 물질의 근간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과 사유도 결국에는 파동이기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된 의식전체적 의식이 훌륭한 사상을 만들었고 이 훌륭한 사상은 고전으로 남는다. 따라서 고전은 수많은 인류 전체 의식의 축적의 산물이다. 여기서 역사적 인물의 초상을 생각해보자. 그것이 카이사르이, 폼페이우스, 혹은 마오 주석이든 엘리자베스 여왕이든지 이 모두 각각의 시대를 움직였던 추동력(impetus)의 상징이다. 인간 전체 의식이 당시 시대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하나의 인물
을 정해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28장에 "하나의 통나무(樸)를 나누어 용도에 따라 다양한 도구와 그릇으로 만들어 쓴다. (중략) 그러나 쪼개지 않는 것은 크게 쓰기 위함이다."하나의 전체 의식(통나무, 樸)은 부분으로(흩어짐, 散)으로 나뉘어진다. 그러나 크게 쓰이기 위해서 통나무 자체로 보존되어 이 세상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인간에 있어서 성인, 혹은 역사적 인물의 현시로 볼 수 있다. 작은 인간 군상은 쪼개진 그릇과 기구이다. 그러나 이 그릇과 기구는 큰 통나무에서 나왔다.
옳건 그르건, 역사적 인물의 등장은 다양한 개성의 군상을 펼쳐침(unfold)으로 이끄는 추동력이다. 그것이 바람직하든 아니든지, 셀레브리티의 등장은 인간 역사의 버거운 무게로부터 커다란 위안이 되어 우리를 쉬게 해준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지치고 외롭고 불행하게끔 되어있다. 실패한 화가의 그림은 다음 후배에게 실패하지 않도록 길을 제시하면서 자기 사명을 다해낸다. 절대계에서 유영하다 얻은 명화가들의 명화들은 인류 모두에게 단비처럼 반가운 복음의 소식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불행하게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절대계로 침잠하다가 뭇사람들에게 보이지않는 아름다움의 상(eidos, 象)을 건져내는 일은 실로 위험하며 아픈 작업이다.
우리는 세계를 특정한 고글의 렌즈를 통해서 파악한다. 우주의 법칙은 주역의 상수(象數)나 과학의 공식으로 파악한다. 아니면 개념의 틀로 세계를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인의 감각 모델로 세계를 느낀다. 시인이 먼저 느꼈던, 감수성이라는 렌즈로 세계를 바라보며 시인의 촉수로 세계를 더듬는다. 반 고흐 이전의 색과 이후의 색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셀레브리티의 연기력(play)을 통해 우리 시대의 총체적 감각과 삶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우리는 그들이 구성한 연출력의 렌즈로 우리의 삶을 꾸미고 있다. 역사적 인물의 대담한 미래 기획에 의해 우리 삶은 이끌려간다.
그러나 이 역사적 인물을 만든 것은 전체 의식의 에너지이다. 각각의 그릇과 기구인(散) 우리 뭇사람의 에너지는 하나로 모여서 다시 통나무(樸)가 된다. 이것이 현재까지 형이상학과 현대물리학이 밝혀낸 인류 역사의 대략적 인간사의 법칙이다.
『논어』의 「위정(爲政)」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는 이와 흡사하다. 우리는 문화계, 사상계, 정치계, 종교계의 큰 인물들이 바라보았던 세계를 모델로 삼아 이를 끊임없이 배워간다. 그때 두루 덕이 펼쳐진다. 김동유 회화의 압도적인 힘과 아름다움은 이러한 인간사의 본질을 매섭게 통찰해내는 작가의 보이지 않는 힘에 있다. 그것은 배워서 된 것이 아니다. 타고난 것이다. 작가는 가까운 것에서 먼 것의 모습을 연상해내는 힘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원리를 포착해내기도 한다. 그는 확실히 프렉탈 이론(fractal theory)의 대가이다. 화분 속에서 산과 강을 발견하며 우리의 강산에서 지구를, 지구의 모습에서 우주의 참모습을 연상해내는 작가의 능력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능력이 화면 위에서 상징적으로 포개지고 나뉘어지다 다시 커다란 하나의 전체로 거듭 태어난다. 그것은 우주가 인간에게 명령한 천명(天命)으로서의 전체 의식을 닮았다. 통나무처럼 하나되어 굳건히 존재하다가 각개의 그릇으로 흩어지고 다시 하나로 거듭되는 소용돌이의 영원한 흐름이 바로 우주의 참모습이고 세상의 실상이자 인간의 삶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러한 지점을 간파하고 있다. 논리적 추론에 의해서가 아니다. 천명을읽을 줄 아는 작가의 선함에서 기인된 직감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칼로카가티아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