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Artist
‘서사적 사계의 초월’
제 그림들의 특징을 잡아 전시 주제를 잘 정하신 것 같습니다.
매번 작업을 시작하기 전 몇 백 장의 사진을 얻는다는 것은 필름카메라 시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저의 작업은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가능하게 되었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화를 할 때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찍은 사진들을 한 장에 보여주는 ‘사진 인덱스 프린트’를 그 당시 처음으로 보았는데, 그것을 그림의 형식으로 도입했습니다.
이 ‘인덱스 프린트’ 속의 사진들은 보통 인화되는 사진보다 사이즈가 작아 귀엽기도 하지만, 사진들의 내용이나 시간의 흐름을 한 눈에 읽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사진이미지들을 어떻게 화면에 옮길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사진과 똑같이 그리는 것은 능력도 안되고 의미도 없는 일이라 사진을 읽어가는 즐거움과 그림으로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동시에 갖기를 바랐기에, 사진적인 느낌을 살려 그리면서 회화적인 요소들도 점차적으로 수용해가면서 작업했습니다.
제 그림은 구성을 하지 않아도 사진들을 작게 그린 것이기에 거리를 두고 보면 어느 정도 추상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추상화처럼 보이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일정하게 그리던 사진들의 크기를 다르게 하고, 규칙적으로 나열하던 사진들의 배치도 자유롭게 하면서, 화면의 공간감을 더 살릴 수 있도록 톤을 달리해서 찍은 사진들도 섞어 그렸습니다. 또 화면 가까이에서 봤을 때는 유화의 특성인 물질감과 붓질 자국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했습니다.
제 작업은 어떤 것을 소재로 한다 해도 그림이 됩니다.
모든 소재에 의미를 두고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기념하고 싶은 것, 기록하고 싶은 것, 감동 받은 것,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 그냥 제 삶 주변에 평범하게 있다가 눈에 띈 것도 그리지만 주로 형식 실험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많습니다.
지나가다 보이는 작은 꽃, 나무껍질, 날마다 변하는 하늘, 높은 굴뚝이 있는 폐허, 개발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아름다운 서리가 있었던 길, 함박눈이 쏟아지던 겨울 밤, 여행지, 신문, 동영상을 캡쳐한 것.......
그림을 시작할 때 담담했던 마음도 오히려 그리면서 정들어 가고 의미를 찾고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은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 형식 실험을 하거나 그때그때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리는 성격 때문에 시리즈 작업이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진과 회화 사이를 헤매다가 아름다운(?) 접점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림 외에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몸이 좀 고달프다는 것, 그림에 푹 빠져 그렸으면 좋겠지만 서툰 솜씨로 인해 몰입이 아직까지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오만가지 생각이 많이 든다는 것 등입니다. 예전에는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 도 닦는다는 말씀을 하시면 은근히 속으로 비웃었는데, 왠지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조금 있으면 신선 반열에 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농담입니다. 살다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람의 경계인가를 누구나 느끼리라 생각합니다.